일상속 사역의 원리들5분

고난과 역경을 다루는 법

고난을 피하며 "왜 나에게?"를 묻는가, 받아들이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묻는가 — 이 태도가 결과를 결정합니다. 올바른 태도로 고난을 받아들일 때 세 가지가 따라옵니다. 성품이 단련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이 깊어집니다. 타인의 고난 앞에서 가장 강력한 섬김은 말이 아니라 중보기도입니다. Lifestyle Discipleship 10장 — "고난과 역경을 다루는 법"

고난과 역경을 다루는 법

태도가 결과를 결정한다

9장에서 고난이 어디서 오는지를 살펴봤다면, 10장은 고난을 어떻게 다루느냐를 다룹니다. 피터슨의 핵심 명제는 간단합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가 취하는 태도가 그 고난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를 결정합니다.

야고보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피터슨은 이것이 감정적 속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의 신앙 행위입니다. "하나님, 이것이 싫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이 내 삶에 특별한 방식으로 참여하시는 기회임을 받아들입니다" — 이런 태도가 우리를 피해자가 아닌 기대하는 배움의 사람으로 세웁니다.

고난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12:11은 "훈련을 받은 자들에게" 평화로운 열매를 맺는다고 말합니다. 훈련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습니다. 카인이 좋은 예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카인은 분노를 선택했고, 동생을 죽이고, 평생 그 무게를 짊어졌습니다.


고난의 세 가지 열매

올바른 태도로 고난을 받아들일 때 세 가지 열매가 맺힙니다.

첫째, 성품입니다.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성품을, 성품은 소망을 낳는다"(롬 5:3-4). 피터슨은 딸 미셸과 사위 글렌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이 볼티모어에서 선교 준비를 할 때, 피터슨 부부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신실하심을 보여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반대로 응답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자리도 없고, 교통사고도 나고, 낡은 집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그들은 욥기를 읽었고,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라"(욥 13:15)는 욥의 태도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내부자가 고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을 때, 주변 사람들이 봅니다. 피터슨의 친구가 억울한 사업 분쟁 중에 비행기에서 동료에게 빌립보서 4:6-7을 보여주었을 때, 그 동료는 성경을 꺼내는 그 사람의 평안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증거가 되었고, 두 사람은 함께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입니다. 바울은 "그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기 원한다고 했습니다(빌 3:10).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배제되고, 가족의 무관심을 견디고, 섬기기 위해 편안함을 내려놓을 때 — 우리는 그분이 겪으신 것을 조금 맛봅니다. 그 참여가 그분과의 관계를 깊게 합니다.


피해자(Victim)인가, 배우는 자인가

피터슨은 두 가지 반응의 궤적을 선명하게 대비시킵니다.

고난을 피하고 도망치며 "왜 나에게?"를 묻는 사람은 하나님의 정의를 문제 삼고, 분노와 쓴뿌리를 키우며, 결국 삶이 분노에 지배당하는 피해자가 됩니다. 반대로 "이것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묻는 사람은 고난을 훈련으로 받아들이고, 성품이 단련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인이 됩니다. 긴 안목(long view)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타인의 고난에 응답하는 법

피터슨은 10장 후반부에서 우리 주변 사람들의 고난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다룹니다. 내부자로 살다 보면 매일 같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 대부분은 "땀 흘리는 것을 보이지 말라"는 불문율 아래 속을 감춥니다. 그래서 위기 속에서 오히려 홀로 남겨집니다.

피터슨의 실천 지침은 이렇습니다.

말보다 섬김을 택하십시오. 동료가 아들을 잃었을 때, 세 동역자와 그 아내들은 즉시 날아와 집을 맡아 운영했습니다. 위로의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례 준비, 손님 응대, 집안일 — 그것이 그들의 언어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너무 많이 말하지 마십시오. 판단하지 말고, 과도한 영적 해석을 삼가십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는 식의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보기도 — 이것이 최고의 섬김입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체포했을 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행 12:5). 기도는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희생이고 헌신입니다. 피터슨은 기도 목록을 성경 속에 넣고 다니며 매일 구체적으로 기도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기도가 대륙을 넘어 사람들과 연결시켜 준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1. 지금 내 삶에 있는 고난 앞에서 나는 "왜?"를 묻고 있는가, "무엇을?"을 묻고 있는가?
  2. 주변에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섬김은 무엇인가?
  3. 나는 진지한 중보기도를 일상의 헌신으로 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