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사역의 원리들5분

고난과 역경을 이해하기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이 하셨다"고 자동으로 결론 내리지 마십시오. 고난에는 다섯 출처가 있습니다 — 죄, 잘못된 판단, 자연 법칙, 사회 구조, 사탄. 하나님이 고통을 제거해 주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출처의 고난이든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시고, 그 한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Lifestyle Discipleship 9장 — "고난과 역경을 이해하기"

고난과 역경을 이해하기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

내부자로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이 질문을 만납니다. 나 자신의 삶에서도, 내가 섬기는 사람들의 삶에서도. 피터슨은 이 장에서 고난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불신 속에 갇혀 신앙이 정체되거나, 다른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게 됩니다.


문제는 신학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에 대해 조각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단편들로 모자이크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선하시고, 사랑이시고, 공의로우시다 — 이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그 이미지와 맞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실패하신 것이라고 결론 냅니다.

피터슨은 말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불완전한 신학입니다. 바울이 말했듯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합니다(고전 13:12).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의 나머지를 알아야 합니다.


고난의 다섯 가지 출처

피터슨은 고난이 어디서 오는지를 다섯 가지로 정리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하나님이 하셨다"는 자동 결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첫째, 죄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세상에 들어온 죽음과 부패, 나 자신이나 타인의 죄가 고통을 낳습니다. 둘째, 잘못된 판단입니다. 성급하고 부주의한 결정의 결과를 감당해야 합니다. 피터슨은 자신이 충분한 조사 없이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재정을 잘 관리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셋째, 자연 세계의 법칙입니다. 물리 법칙, 질병, 노화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말라리아 모기에 물렸다면 "하나님이 왜 이것을 허락하셨는가"가 아니라 "왜 모기장을 치지 않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넷째, 사회와 국가입니다. 부패한 지도자들의 탐욕이 수백만의 삶을 망가뜨립니다. 믿음이 그 결과로부터 우리를 면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섯째, 사탄입니다. 그는 유다를 충동했고, 욥을 공격했습니다. 그는 직접 주도권을 가지고 움직이며, 우리는 그의 계략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 —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이 악의 문제와 무관하시다는 뜻이 아닙니다. 피터슨은 두 가지 보완 진리를 제시합니다.

창조 때 하나님은 땅을 인간에게 맡기셨습니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졌고, 그 의지로 반역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사탄이 이 세상의 일시적 지배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영역은 한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사탄의 사망 선고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하나님은 궁극적 주권을 결코 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역사를 통제하시고, 불의의 임계점을 정하시며, 마지막에 모든 권세를 철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사용하신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출처가 무엇이든 — 죄든, 사탄이든, 자연재해든 — 하나님은 그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십자가가 가장 분명한 예입니다. 사탄이 충동한 악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장 끔찍한 사건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약속하지 않으신 것

피터슨은 명확히 구분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제거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은 고문을 당하고, 돌에 맞고, 톱으로 잘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함께 계신다는 것,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신다는 것, 고난 가운데서도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지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