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피터슨은 1~2장에서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3장에서는 반대 방향을 바라봅니다. 변하지 않는 것, 즉 영적 성장의 목표는 어느 세대에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사회는 변하고 사람도 변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내용과 그 목표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변해야 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역할: 영적 부모
피터슨은 신약 전체가 제자삼는 관계를 하나의 메타포로 묘사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자녀 관계입니다.
바울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고(갈 4:19), 데살로니가에서는 어머니처럼, 아버지처럼 돌보았다고 했습니다(살전 2:7-11). 베드로는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 말씀을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이 메타포가 말하는 것은 태도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돌볼 때의 세심함, 개별적 주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 바로 그것이 영적 부모의 태도여야 합니다. 반대로 이 메타포가 말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통제하거나 의존성을 만드는 것은 영적 부모됨이 아닙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라"(고후 1:24).
목표 1: 기초 — 그리스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기초를 놓는 일"로 이해했습니다(고전 3:10-11).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고,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만큼 세워주고,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초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성육신 —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 십자가 — 우리 대신 죽으셨다. 부활 —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다. 승천 —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 이 네 가지 진리는 너무나 거대해서, 그것이 참이라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그 주위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목표 2: 상부 구조 — 믿음, 소망, 사랑
바울이 자신의 영적 자녀들을 평가할 때 사용한 기준은 단 세 가지였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데살로니가후서를 보면, 바울이 믿음과 사랑은 칭찬하면서 소망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 그들의 소망이 흔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편지의 목적은 소망을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왜 믿음, 소망, 사랑이 중심인가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이 세 덕목이 살아있다면 복음이 진정으로 그 사람의 삶에 뿌리내렸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이 세 가지가 있는 곳에는 결국 다른 모든 덕목도 따라옵니다.
믿음은 선행과 인내와 용기를 낳고, 소망은 순결과 기쁨과 담대함을 낳으며, 사랑은 용서와 섬김과 겸손을 낳습니다.
복음이 삶에서 끊어진 비극
피터슨은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를 이렇게 진단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머릿속에는 있지만 삶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독, 결혼 위기, 불안, 분노, 시간 관리 — 이런 현실의 문제들을 만날 때 우리는 성경 대신 심리학책을 찾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인간의 가장 깊은 필요를 다룬다는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해결책은 복음의 진리를 한 손에, 21세기의 실제 문제들을 다른 손에 들고, 그 둘 사이에 빛이 비칠 때까지 성경과 씨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목표를 요약하면
피터슨은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와 그에 관한 진리를 깊이 이해하여 모든 삶의 영역에서 변화와 능력을 경험하는 것. 둘째, 믿음, 소망, 사랑 안에서 자라가는 것 — 그리스도와의 친밀함과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 의존을 통해. 셋째, 복음을 받은 자로서 스스로 복음의 전달자가 되는 것.
그리고 매일 아침 두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라고 권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물었던 그 질문들입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그리고 "무엇을 하리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