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교회에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세상으로 가야 한다"
2장은 핵심 전제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불신자를 교회로 끌어올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습니다. 하지만 피터슨은 말합니다. 그 전제 자체가 점점 더 비현실적이 되어가고 있다고. 세속화된 현대인의 대다수에게 교회 안에서 하는 일은 이미 그들의 세계와 무관합니다.
구약의 전략 vs. 신약의 전략
피터슨은 구약과 신약의 선교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짚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전략은 "와서 보라(Come and See)" 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상 한가운데 심어두시고, 그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통해 이방 민족들이 스스로 끌려오게 하셨습니다. 실제로 그 계획은 이스라엘이 신실할 때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방향이 바뀝니다. 예수님은 소수에게 집중하시고, 그들을 세상으로 흩으셨습니다. 그 흩어짐의 결과가 바로 교회입니다. 신약의 전략은 "가서 살아라(Go and Be Among)" 입니다. 화살표의 방향이 뒤집혔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지만, 우리의 지정된 자리는 세상 안에 있습니다."
내부자란 누구인가 — 고린도전서 7장
피터슨이 주목하는 핵심 개념이 "내부자(Insider)" 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 바울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자리를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신자 배우자와 살고 있다면 → 그 자리에 머물라. 종으로 살고 있다면 → 그 자리에서 섬겨라. 어떤 문화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 그것을 버리지 말라.
왜일까요?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그는 이미 하나님이 배치하신 사역의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옛 관계들을 정리하고, 결국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만 살게 됩니다. 피터슨은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고유한 사역지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내부자는 혼자 싸우지 않습니다. 피터슨은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가 사역에도 스며들었음을 지적합니다. "내 친구들이니까 내가 혼자 다 해야 해"라는 태도는 결국 소진과 실패로 끝납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형제, 동역자, 함께 싸우는 병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에게는 형제자매도 있고 동역자도 있지만, 함께 싸우는 병사는 매우 드뭅니다. 우리 각자는 서로 다른 은사와 강점을 가졌고, 그것이 팀이 되어야 효과가 납니다. 피터슨은 자신의 아내와 함께, 그리고 몇 명의 동료와 함께 팀을 이루어 여러 관계망에서 사역한다고 고백합니다.
불완전한 사람이 불완전한 사람을 돕는다
여기서 피터슨은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을 건드립니다. "내 결혼 생활도 힘들고, 아이들 걱정에, 재정도 빠듯하고, 내 신앙도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 같지 않은데 — 내가 무엇을 줄 수 있겠어?" 라는 질문입니다.
피터슨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삶이 완벽하게 정리된 사람이 아니라, 같은 전쟁을 싸우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희망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상처받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의 친구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오랜 개인적 싸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야고보서 5:16의 방식으로 살기 시작한 그 친구에게, 날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완성된 신앙이 아니라 진실한 싸움, 그리고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 나는 지금 어떤 삶의 자리에 있는가? 그 자리가 하나님이 나를 배치하신 사역지일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가?
- 나는 "교회로 끌어오기"에 익숙한가,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기"에 익숙한가?
- 내 삶의 혼란과 어려움이 오히려 불신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 나와 함께 "병사"로 싸울 팀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