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피터슨은 도발적인 질문으로 책을 시작합니다. 교회 주보에는 제자훈련 모임이 있고, 서점에는 제자훈련 교재가 넘쳐나며, 많은 사람들이 그 코스를 이수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의 영적 풍경은 저자가 1950년대에 꿈꾸었던 모습과 이토록 다를까요?
세속화의 폭풍이 우리에게 남긴 것
피터슨은 현대 서구 사회를 뒤흔든 세 가지 혁명을 추적합니다. 15세기 경제혁명, 산업혁명과 도시화, 그리고 계몽주의의 철학혁명이 합쳐지면서 근대성(modernity)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세계관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① 상대주의(Relativism): 진리란 없다. 네가 믿는 것은 무엇이든 괜찮다. ② 다원주의(Pluralism): 어떤 삶의 방식도 다 받아들여진다. ③ 신앙의 사유화(Privatization): 믿음은 개인적인 영역에 가두어야 한다.
이 세 힘이 결합될 때 어떤 일이 생길까요? 사람들은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행동에 대한 책임도 사라지고, 결국 삶이 무너집니다. 사람들이 상처를 입게 됩니다.
우리가 붙들고 있던 잘못된 전제들
저자는 자신의 초기 제자훈련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은 전제들로 움직였습니다.
- 제자훈련의 진척은 특정 영적 훈련(말씀 암송, 큐티, 성경 공부)의 실천 여부로 측정된다.
- 이 훈련에서 실패하는 사람은 헌신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 결론: "강한 자와 함께 움직여라(Move with the movers)."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전제였는지, 피터슨은 브라질 대학생 선교 현장에서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진리에 무관심한 학생 한 명을 1년 이상 씨름하며 믿음으로 이끌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생존자 원칙"을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눈높이에 맞추어 함께 걷는 것이 진정한 제자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서진 자를 향한 예수님의 눈
여기서 피터슨은 누가복음 4장과 이사야 61장으로 눈을 돌립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러 왔다."
예수님의 사역 대상은 강하고 헌신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 마음이 부서진 자, 포로된 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의의 참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 약한 자가 변화되어 세상을 재건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가 필요한 제자도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세속 문화의 파도에 쓸려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강한 자만 골라 세우는"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치유는 "자기 발견"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온다
피터슨은 현대 사회가 치유를 위해 세속 상담가를 "사제"처럼 찾아간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 스스로를 수용하라.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라."
그러나 예수님의 메시지는 정반대입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용서받았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상호 의존적 관계 — 그분과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 로 부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 나는 "강한 자만 선별해 투자"하는 방식으로 사역해 왔는가?
- 내 삶 주변의 "부서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가?
- 전도와 양육의 경계를 너무 엄격히 나누고 있지는 않은가?
피터슨은 이 책에서 전도와 제자훈련을 하나의 연속된 여정으로 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도운 방식 — 함께 성경을 탐구하고 삶을 나누는 것 — 그것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법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